"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
나는 일본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먹는 것에 눈을 떴다. 20여년전의 일본의 외식문화는 다채로웠고 음식의 수준도 꽤 높았다. 일본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져 있었기에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먹는 것마다 흥미롭게 맛있었고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곳도 많았다. 초저금리의 일본에서는 취미생활도 융자를 받아 한다고 했다. 직장인들은 다도나 꽃꽃이 요리 수업을 많이 듣고 있었다. 나도 빵과 케이크 무료 체험 교실에 다녔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엄마가 먹을 것을 고를 자유를 준 덕분에 숨겨졌던 입맛도 일본 유학 생활을 통해 찾았다. 지금은 먹는 것을 만들고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먹는 것이 내 삶의 큰 기쁨이 되었다.
엄마에게 배운 넉넉한 나눔의 기쁨도 내 몸에 배인 습관이 되었다. <파티세리 비>라는 케이크 가게를 했을 때 사먹는 밥이 싫어서 쭈욱 밥을 해 먹었다. 스태프들도 같이 먹었다. 요리 주방이 아니었지만 엄마가 보내준 양념들이 있었고 든든한 김치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하는 주방 직원들이 오후 퇴근 하고 나면 친구들이 왔다. 그때는 조금 더 특별한 밥상을 차렸었다. 가끔은 술도 기울이면서.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 나는 이런 저런 요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새벽부터 빵과 케이크를 만들어 내고 저녁 즈음부터는 다시 요리를 한다. 친구들을 떠 올리고 그 친구에 맞는 재료를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삼신할미가 짝을 지어줄 때의 즐거움 같은 것일테다. 그리고 궁합에 맞는 요리를 친구들이 맛있게 먹을 때, 나는 기뻤다.
누군가를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맛있게 먹을만한, 기뻐할 만한 음식을 한다는 것은 참 충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초대라는 말도 좋다. 환대와 초대는 이후 내 이름에 앞서는 내 요리의 철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