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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 출판

터치 능력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휴대폰을 새로 샀다.


새것, 그중에 기계에 대해서는 낯가림이 심한지라 겁이 났지만 좋아하는 올드 팝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으며 여행 중에도 인터넷에 접속해 메일 확인도 하고, 무엇보다 문자 메시지 창이 매우 커 안경을 안 쓰고도 글씨를 조합할 수 있는 것에 혹해서 그만 스마트폰으로 결정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함께 설명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소리 내어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생소한 글들이었으니 참 황당한 일이었다. 전화가 와서 받으려 해도 전처럼 뚜껑을 여는 것도 버튼을 누르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손가락으로 쓱 그어야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시내에 나가 휴대 전화 가게 젊은이에게 전화 받는 것부터 물어야 했다.

 

“화면에 손가락으로 드래그(drag) 하셔요. 자꾸 여기저기 만지고 들여다보셔야 돼요. 화장실에서도 차에서도 틈만 나면 자꾸 보고 만지면 다 되는 거예요.”

 

젊은이의 말에 어느 날 작정을 하고 앉아서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창에 뜨는 수십 개의 기호는 도대체 무엇에 쓰는 것인지 아무리 들어가 보고 읽어보아도 알 수 없는 요지경 속이었다.

그러다 무엇이 엉켜버렸는지 전화가 와도 연결조차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다시 나가 물어보고 설명을 듣고 와도 다시 내가 만지면 뒤엉켜 그때마다 휴대 전화 가게로 가야 했으니 울화통까지 터진다. 내가 최첨단 기계를 산 게 아니라 애물단지를 사고 말았구나. 후회막급한 일이었다.


◆◆◆ 



몇 백 통의 문자 메시지는 무료이고, 은행의 통장관리서부터 이쁜 손자들 사진도 찍어 보관하고 카드가 없어도 물건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모르는 단어를 찾는 사전 기능에 교통정보, 뉴스, 영화, 맛집 정보는 물론 메모 창에 생각나는 문장을 그때그때 적어 놓을 수 있으니 글 쓰는 데도 아주 유용하다고 했다.


막상 내가 써보니 그림의 떡이었다. 


앞으로는 안구인식, 목소리 인식 등도 개발된다니 도대체 어드메까지 진화하려는지 알 수가 없으나 이 정도에도 스마트폰의 기능을 1%도 활용하지 못하는 나는 완전한 저능에 속한다는 자책이 시작됐다. 좋은 기능이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꿈에 본 떡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외려 크고 조심스러워 핸드백 속에서도 어디 부딪힐까 걱정스럽고 불편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 스마트폰이 일반화되고 있는 시절에 손에 들고 우두망찰하는 어리석은 할망이 되고 말았을까. 


그런데 여섯 살짜리 손녀딸은 혼자 만지작거리더니 펜 같은 것을 찾아내 색색의 예쁜 무지개를 그려 놓지 않는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냈을까? 혹시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망상까지 들었다. 지금 오십 고개를 바라보는 큰딸이 대학에 입학해 삐삐를 사겠다고 했을 때 사업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게 왜 필요하냐고 꾸지람을 했었다.


불과 삼 년 뒤 작은애는 고3 때 당연한 듯이 삐삐를 갖고 다녔다. 지방출장이 잦은 남편 직장에서 휴대폰이라는 것을 지급했는데 안테나가 달린 무전기만 한 것을 신기하게 여긴 것이 엊그제 같다. 그 뒤 휴대폰 시대가 도래했다. 누군가의 휴대 전화가 울리면 너도나도 제 가방을 열어보던 시절에는 곗돈을 타서 휴대 전화 줄에 금돼지를 만들어 달기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물론, 눈과 귀만 멀지 않았으면 이땅의 산골 팔십 노인도 당연히 갖고 있다. 신식 스마트폰이라는, 당최 대책이 안서는 이 물건이 나올 때까지 고작 이십 년이 걸린 것이다. 빠르게 달려가는 정보문화가 무섭다. 


◆◆◆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이 물건의 이용가치를 알아내야지, 굳게 마음을 먹는다. 휴대 전화 가게에 또 들러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것이 삼 년 동안 쓰는 것으로 계약되었다면서요? 그때는 돈도 안 내고 아주 내 것이 되는 것이지요?” 


그때쯤이면 스마트폰으로 여러 가지를 이용할 수 있는 재주꾼이 되어 있겠지 싶어 물어본 것이다.

 

“삼 년 계약인데요, 그때 되면 다시 새것으로 바꾸셔야지요?” 


또 바꾸라고? 벌써 머리가 어지럽다. 삼 년 동안 애써 익혀 놓는다 해도 그게 또 무슨 소용인가.


 

“저기, 여섯 살짜리 손자는 스스로 별것을 다 찾아내더라구요. 왜 나는 잘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터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입니다.”


 

젊은이의 눈매에 깊은 동정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터치 능력이 없다구? 그게 무슨 말일까. 터치란‘ 만지다’라는 뜻 아냐? 언제 그런 낱말이 새로 생겼지?


아무리 늙어도 두 손이 있는데 왜 못 만져? 손으로 김치도 담고 만두도 만들고 송편을 얼마나 이쁘게 빚으며 손녀딸 인형 옷을 내가 얼마나 잘 만드는지 알아?

 

내가 터치 능력이 없다고? 상추밭 이랑이 얼마나 반듯하고, 고사리를 꺾을 때 한 번에 어느 부분을 잘라내야 하는지 만지기만 하면 척 알 수 있는 손을 가졌는데도? 올봄에 노란 송홧가루를 한 되도 넘게 장만하고, 이 손으로 나물 무치고 화전을 부치고 깨강정을 얼마나 잘 만드는데.


이 손으로 평생 식구들 밥 해먹이고 빨래하고 세간을 윤나게 닦고 얼마나 장한 손을 가졌는데? 스마트폰, 그것은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만져주어야 되는 건데?


갑자기 나를 손 빙신으로 만드는 스마트폰. 대책 없는 애물단지.

 

이 상놈의 물건을  이제 대체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