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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 출판

네번째, 초대


일본에서 다닌 어학원은 인기가 많아 첫 3개월은 오후반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어학원은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 대학생 들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일본어를 잘하기 때문에 비한자권 문화의 외국인들은 한국인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점심 시간 이후에 시작하는 오후 초급 반에는 비한자 권이고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반에도 내 엄마 또래의 벨기에 여성이 있었다. 이름은 크리스티안, 일본어는 매우 느리면서도 수업시간에는 끊임없는 질문 공세를 퍼붓는 학생. 유독 어느 유럽 회사의 지사장 부인, 외교관 부인 등 화려한 학생들이 많았던 반이어서, 흰 머리를 질끈 묶은 크리스티안의 허름함과 검소함은 더 눈에 띄었다.  내 눈에 그 흰머리는 늙음이 아닌 부러움이었다.  60근처의 나이에도 어학원에 다닐 수 있는 열정이 존경스러웠다. 

어느 겨울에 나는 독한 감기에 걸렸는데 크리스티안이 자기의 명함을 주면서 너무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꼭 전화를 하라고 했다. 명함엔 그들 부부의 이름인 <크리스티안&브루노> 그리고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 후로도 한국에 안좋은 뉴스가 나오면 너의 가족은 괜찮은지 꼭 안부를 물어주었다. 내가 크리스티안에게 준 도움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녀보다 조금 더 일본어를 잘했으니까, 어학원 사무실에 동행해서 크리스티안이 하는 일본어를 다시 일본어로 통역해 주거나, 수업 신청을 도와주거나 물건 사러 갈 때 동행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 우리 집에 저녁 먹으로 올래? 후타고타마가와 역에서 6시에 만나!"

부자들이 산다는 그 후타고타마가와야에 산다고?  늘 허름할 정도로 검소했던 크리스티안이 후타고타마가와야에 사는 게 조금 의외였다.  


역에 도착해서 바라본 풍경 속에 아주 멋진 하얀 건물이 있었다. 어느 유명 건축가가 만든 것이라고 들었다. 마중 나온 크리스티안이 남의 일처럼 말했다. 

"나 저기 1층에 살아."  

(허걱) 


놀라지 않은 척 반응하며 크리스티안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집은 내가 여태까지 가 본 모든 집들 중에서 가장 좋고 비싸보이는 집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그 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을 했던 것은 집의 규모와 값나가는 가구들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남편 브루노는 실리콘을 만드는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대표라고 했는데, 그날도 출장을 마치고 큰 트렁크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크리스티안과 나에게 비쥬를 하고 짐을 정리한 후 저녁을 만들러 키친으로 들어오는 브루노의 모습은 늘상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해 보였다. 

요리라고 할 것도 특별히 없었다. 

거친 빵과 수프가 그들이 준비하는 저녁의 전부였다. 같이 수프를 끓이고 빵을 자르며 우리는 쵸콜릿은 벨기에보다 한국의 가나쵸콜릿이라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많이 웃었다. 단촐한 식사가 세팅된 테이블은 정갈했고 건강했다. 음식은 맛있었고 갖가지 야채가 들어간 수프는 따듯했다. 온 몸이 온화해지고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중년의 남성은 딸 뻘되는 손님과 같이 저녁을 먹으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줬고, 오직 게스트에게만 집중했고, 배려했으며 중년의 아내는 그 모습을 흐믓하게 지켜봤다. 식사가 끝날 부렵 브루노는  화상 회의가 있다며 들어갔고, 나는 크리스티안과  저무는 도쿄의 밤을 감상했었다. 그 집에선 날이 좋으면 후지산이 아주 잘 보인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밤을 잊을 수가 없다. 진수성찬을 대접 받은 것 이상으로 나는 작지만 소박했고 검소했지만 따뜻했던 그들의 음식과 진심, 그리고 온통 나에 대한 배려로 넘쳐나던 두 부부의 시선을 기억한다.

나는 그런 초대를 최고의 초대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초대가 끝난 후 온 몸으로 지난 시간의 온기가 남겨져있는 그런 것, 나는 누군가에게 늘 이런 초대를 하고 싶다. 



이런 초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