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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 출판

(조울 할매- 삶을 말하다) 아고라 (많은 수정이 필요함)



팔 다리 허리가 아픈 여자들이 다니는 수영장 아쿠아반은 늙은여자들의 아고라다.  거기서 노년의 여자들은 일일연속극 얘기를 해가며 다가오는 말년에 대한 불안과 며느리의 악행에 대해 성토한다.


연속극은 보통 삼사대가 한집에 사는 설정으로 전개되는데 서로를 쥐어박고 박히는 그 과장과 억지드라마가 나름대로 시청자들에게 감정이입 되어 대리만족도 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며느리는 그저 초장에 단단히 잡아야 한다구” 


시어머니 한 명이 주먹까지 휘두르며 우렁차게 말한다. 잡혀야 할 며느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불쌍하기조차 하다.


“저희들 돈벌어 산다구 맡겨 놓은 애 뼈빠지게 봐주면 주말에는 애보러 오는 사돈 때문에 밥해야 된다구.”


이에 질세라 젊은여성들이 몰려있는 수영반에는 같은 소재의 다른 주제가 횡행하는 아고라가 된다. 


홧병.속병.우울증을 유발시키는 폭력적인 시집살이도 등장하고 며느리의 인격을 무시하는 엽기시어머니도 출연한다.


‘차라리 고아랑 결혼 할걸 그랬어요’ 

‘못된 며느리 소리 듣는게 나아요. 착한 며느리 노릇 하다가는 몸과 마음이 다 상해요’ 


이런 소리가 등장할 지경이면 여기가 18세기 버드나무 늘어진 동네 우물가인지 21세기 한복판의 수영장인지도 헷갈린다.



◆◆



가족이란 오래된 인류의 제도이기 전에 ‘관계’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네가 나와 같으려니 하는 것이다. 함부로 경계를 허물고 들어와 나의 이기적인 만족을 위해 상대를 희생시키고 상처 입힌다. 그건 시어머니 쪽도 며느리 쪽도 공평하게 해당된다. 사실 시어머니도 예전에는 억울한 며느리였고 며느리도 언젠가는 불편한 시어머니가 되리니.. 


진짜 문제는 삼각관계에 있고, 그 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엄마의 아들들에게 있다.


그 꼭지점에는 두 여자가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는 것이다. 아들이면서 남편인 그가 선량한 피해자도 되고 무책임한 방관자도 되어 엉거주춤 서 있기 일쑤다. 결국 삼각관계란 양다리 걸친 인물이 매듭을 풀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 남자가 수수 방관 하는 동안 피가 진한 시어머니보다 물의 관계인 며느리가 나가 떨어진다. 오죽하면 효자는 세 번 장가 간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평소에는 손톱이 닳도록 희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청소 한번 설거지 한번 해준 적 없는 아들도 장가를 가면 갑자기 효자가 된다. 지금까지 엄마가 얼마나 불쌍했던가를 깨닫는다.  그것까지는 기특한 일이나, 고질적인 아들들의 문제는 엄마가 했던 일을 아내에게 떠맡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효도는 대개 여자들 몫이 많다. 정확히 말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며느리 차지다. 자신의 책무를 남에게 넘기는 것은 성숙한 인간의 태도가 아니다.


<왜 그런지에 대한 글이 추가되어야 함>


◆◆◆

[출처]왕초보 할머니의 글램핑 후기12 (캠핑퍼스트(초보캠핑))| 작성자슈

나는 어땠을까?


젊은 날. 자기비하에 빠져 침잠하던 나에게 연애는 새로운 열정이었고 도피처였으며 그래서 가난한 친정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결혼했다.

당연히 어떤 마음가짐, 어떤 태도로 결혼생활을 할 것인지를 배운 적이 없다. 거의 대부분은 직접 현장에서(?) 깨지면서 배웠다. 


결혼한 후 시댁으로 갔을때의 일이다. 본가에서 따로 잔치를 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너도나도 덕담을 했다. 이쁜 며느리봐서 좋겠다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그때 사랑방에 혼자 앉아있었다.


“우리 색시는 안 이뻐!” 빽 고함을 치듯 시어머니가 응수를 했다.


방에서 나는 아주 깜짝 놀랐다. 안 이쁘다는건 인물이 보잘 것 없다는 뜻도 되고 여러 가지 마음에 안든다는 뜻도 포함된다. 시어머니의 눈에 나는 그냥 미운 며느리였던 것이다.  


놀라고 서운하면서도 나는 그때 철없는 생각으로 앙심 비슷한 마음을 먹었는데  < 어떤 앙심이었는지를 설명해야 함. 이 부분이 좀 더 자세히.> 앙심 비슷한 오기를 가진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살갑게 굴지 않았을 것은 당연할테고 어머니도 내게 다정스런 시어머니는 아니었다. 따로 살고 있는 우리는 집안 대소사나 명절때만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시댁에 가서 입을 봉하고 집안일에 매달린 것은 행여 내 마음이 들통날까였을지도 모른다.


그게 없어진건 아이를 둘이나 낳고 난 뒤 십 여년이 흘러서였다. <여기도 자세히 설명. 왜 그 생각이 없어졌는지> 내가 딸이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어머니의 농으로 흘러 넘겼을 말이었을 것이다. 며느리였기에 마음에 담아둔 것이 아닐까.


◆◆◆◆


시어머니 시대의 여자들은 아들을 낳고 안낳고의 여부로 며느리를 향한 대우가 달라졌다. 나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둘을 낳았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한번도 아들이 없음을 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딸이 자라 시집을 가게 되자 내가 겪었던 구닥다리 망령이 시대를 이어 유전의 강물로 흘러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말이 좋아 딸 같은 며느리, 친정엄마같은 시어머니지 실제 그런건 존재하지 않았다.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이다.


그 선을 넘어서 잘 지낼 생각을 미리 하지 말고 시어머니 대접. 며느리 대접을 먼저 해야되지 않을까.캠핑장은 물론이고 백화점이나 식당이나 여행지에서도 딸과 친정엄마의 조합이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조합보다 단연 많다.

왜 그런지 며느리가 살갑지 않다고 타박하기 보다 웃어른인 시어머니가 먼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 이런 방식은 너무 계몽적임)


효성이 지극한 아드님들이여. 당부하나니, 네 어머니가 불쌍하거든 부지런히 손수 효도 하시라. 


딸들도 심청이처럼 효도는 못해도 공들여 키운 친정 부모 입에서 아들 없어 서럽다는 탄식이 나오지 않도록 효도 하시라.

인간 관계에서 가장 성숙하고 아름다운 관계는 기대도 하지 않고 보상도 받지 않는 것이다.

이승에서 만난 두 여인과의 인연을 서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시라.


이 꼭지는 주제를 우선 선명하게 가줘야 함. 본인의 경험을 좀 더 육성적으로 키우고, 뭘 말하고 싶은지를 다시 정해주시기 바랍니다.